박람회 현장에서 계약서를 받으면 대부분 앞장의 금액만 보고 뒷장은 넘깁니다. 문제가 생기는 건 항상 뒷장입니다.
계약 전에 확인해야 할 조항을 순서대로 정리했습니다.
조항 1 — 계약금의 성격
계약금이 총액의 얼마인지, 그리고 이것이 위약금으로 전환되는 조건이 무엇인지가 첫 번째입니다.
계약금 전액 환불 불가로 명시된 계약과, 예식일 기준 일정 기간 전 취소 시 일부 반환되는 계약은 위험도가 다릅니다. 서울 인기 홀은 대기 수요가 있어서 전자의 조건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확인할 실무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대체 계약자가 생겼을 때의 처리입니다. 취소한 날짜에 다른 계약이 성사되면 위약금이 조정되는 조항이 있는지 보세요.
조항 2 — 날짜 변경과 취소의 구분
이 둘은 전혀 다른 사안인데 계약서에 뭉뚱그려져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날짜 변경은 같은 홀 안에서 슬롯을 옮기는 것이고, 취소는 계약 자체의 해지입니다. 변경은 위약금 없이 처리되거나 소액의 수수료로 끝나는 경우가 있고, 취소는 위약금이 발생합니다.
변경 조건에서 확인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변경 가능 횟수와 시간대 등급 간 이동 가능 여부입니다. 성수기 토요일 낮에서 비수기 평일로 옮기면 대관 조건이 재산정되는데, 이때 이미 낸 금액이 어떻게 처리되는지가 명시돼 있어야 합니다.
계약 시점에 미리 물어두는 게 좋습니다. 실제로 변경할 때 문의하면 협상 여지가 없지만, 계약 전에는 조건을 명시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습니다.
조항 3 — 보증인원의 확정 시점
보증인원을 언제까지 조정할 수 있는지가 적혀 있어야 합니다.
계약 시점에 확정되는 계약서와, 예식 며칠 전까지 조정 가능한 계약서는 부담이 완전히 다릅니다. 후자라면 하객 집계를 마친 뒤에 정확한 숫자를 넣을 수 있습니다.
조정 가능하더라도 하향 조정의 폭에 제한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약 시 200명, 하향 조정 한도 10퍼센트처럼 정해져 있으면 180명 아래로는 못 내립니다. 이 한도를 숫자로 확인하세요.
조항 4 — 대관료 면제 조건의 정확한 문구
대관료 0원 표기의 근거가 되는 문구를 찾아야 합니다.
“보증인원 충족 시 면제”라면 미달 시 얼마가 부과되는지 금액이 적혀 있어야 합니다. 금액 없이 “별도 협의”로 되어 있으면 그건 조건이 아니라 여지입니다.
조항 5 — 홀 변경 관련 조항
계약한 홀이 아닌 다른 홀로 배정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같은 건물 내 다른 층, 다른 홀로의 변경입니다.
이런 조항이 있다면 어떤 경우에 발동하는지, 그리고 그때 하객에게 통지하는 시점이 언제인지 확인하세요. 청첩장을 이미 발송한 뒤에 홀이 바뀌면 곤란합니다.
조항 6 — 외부 업체 반입 규정
본식스냅 작가를 따로 부르거나, 꽃을 외부에서 가져오거나, 답례품을 직접 준비하는 경우에 적용됩니다.
반입 자체가 금지된 홀이 있고, 반입료를 받는 홀이 있고, 자유로운 홀이 있습니다. 본식스냅을 별도 섭외할 계획이라면 계약 전에 이 조항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계약 후에 알면 이미 늦습니다.
조항 7 — 스드메 계약의 개별 항목
스드메가 묶인 계약이라면 각 업체별 조건이 별도로 명시돼야 합니다.
특히 확인할 것은 담당자 지정 여부입니다. 상담 때 본 포트폴리오의 작가가 실제 촬영 작가가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계약서에 담당자 이름이 없으면 배정은 업체 재량입니다.
드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약 등급 안에서 선택 가능한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등급 초과 시 추가금이 얼마인지가 문서에 있어야 합니다.
조항 8 — 천재지변과 불가항력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 대한 조항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 조항의 중요성이 크게 올라갔습니다.
행정 조치로 예식이 불가능해진 경우, 인원 제한이 걸린 경우의 처리 방식이 적혀 있는지 보세요. 위약금 없이 연기가 가능한지, 계약금이 유지되는지가 핵심입니다.
현장에서 사인하지 않아도 됩니다
박람회 현장가는 대부분 며칠간 유효합니다. 계약서를 받아서 집에서 읽고, 위 여덟 개 조항을 확인한 뒤에 결정해도 조건은 그대로입니다.
판단 기준을 하나만 두면 간단합니다. 되돌릴 수 있는가입니다. 얼리버드 할인율이나 사은품 구성처럼 조건이 좋아지는 방향은 현장에서 받아도 됩니다. 위약 조항과 보증인원처럼 되돌리기 어려운 항목만 집으로 가져가면 충분합니다.
유효기간을 문서에 명시해달라고 요청하세요. 이 요청 자체가 협상의 시작입니다. 응하지 않는 업체라면 그 사실이 이미 판단 근거가 됩니다.
도장을 찍기 전 마지막 확인
계약서를 다 읽었다면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봅니다. 특약 사항란입니다.
상담 중에 실장이 구두로 약속한 내용이 전부 여기에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사은품 구성, 추가 서비스, 할인 조건, 업그레이드 약속 같은 것들입니다. 본문 조항이 아무리 잘 돼 있어도 특약란이 비어 있으면 구두 약속은 근거가 없습니다.
비어 있다면 그 자리에서 적어달라고 하세요. 손글씨로 적고 양측이 서명하면 효력이 있습니다. 이 요청을 미루면 나중에 확인할 방법이 사라집니다.
계약서에 없으면 요구할 수 있는 것
계약서는 업체가 만든 문서라 우리에게 유리한 조항이 저절로 들어 있지는 않습니다. 요구해서 넣을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담당자 이름 명기. 스드메 계약에서 특히 유효합니다. 상담 때 본 포트폴리오의 작가로 지정해달라는 요구는 정당합니다.
둘째, 견적 유효기간 명시. 구두 약속을 문서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셋째, 기본 세팅 사진 첨부. 꽃과 장식의 기준을 문서에 고정하면 나중에 분쟁이 없습니다.
넷째, 보증인원 조정 기한과 한도. 숫자로 적어달라고 요청하세요.
이 네 가지는 업체 입장에서도 크게 부담스러운 요구가 아닙니다. 요청했을 때 반응을 보면 그 업체의 성격도 함께 파악됩니다. 흔쾌히 넣어주는 곳과 곤란해하는 곳이 갈립니다.
조항 9 — 현금 요구와 별도 정산 항목
계약서에 없는데 당일 현금으로 요구되는 항목이 있습니다. 헬퍼 비용이 대표적이고, 홀에 따라 도우미 팁이나 특정 스태프 사례가 관행처럼 붙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걸 미리 물어보는 게 좋습니다. 액수 자체는 크지 않지만 예식 당일에 현금을 준비하지 못하면 곤란해집니다. 상담 때 “당일 현금으로 준비해야 할 항목이 있나요”라고 직접 물으면 대부분 알려줍니다.
답변을 문자나 메일로 남겨두면 더 좋습니다. 구두로 들은 내용은 당일에 기억이 안 납니다.
서울은 업체 수가 많아서 대안이 항상 존재합니다. 조급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서울웨딩박람회에서 계약서를 받아오되, 사인은 하루 재우고 하는 걸 권합니다.


